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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기금화 3부작 (3) 성패는 그릇이 아니라 기본값에 있다

9월 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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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기금화 3부작

퇴직연금 적립금이 501조를 넘었고 정부는 2026년에 기금형을 들인다. 그 변화가 내 노후소득이 되는지를 제도·전달·설계 세 층으로 나눠 따진다. 1편 예금에 잠긴 501조, 정부가 지금 손대는 이유 2편 같은 돈을 넣어도 한국 4억, 미국 12억 3편 성패는 그릇이 아니라 기본값에 있다 ← 지금 이 글


이 글을 읽기 전에

  • 이 글은 퇴직연금 기금화에 대한 관측과 설명이다. 특정 종목·펀드·상장지수펀드의 매수·매도·비중을 권하지 않는다.
  • 데이터 기준일은 2026년 7월 24일이며, 그 이후의 시장 변동은 반영되지 않았다. 적립금과 수익률은 2025년 말 공시, 수급방식은 2024년 통계, 국제 비교는 각국 최신 공시가 기준이다. 표마다 기준 연도가 다르니 서로 다른 해의 값을 빼서 변화폭으로 읽으면 안 된다.
  • 이 글이 답하지 못한 것은 편 말미의 「이 편의 유보」에 그대로 적어 두었다. 먼저 읽어도 좋다.

본 자료는 공개 통계와 연구 관측에 기반한 정보 제공 목적입니다. 특정 증권·펀드·암호화폐·부동산의 매수·매도·보유를 권유하지 않으며, 투자 손실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 의사결정은 독자 본인의 판단과 필요 시 전문가 상담에 따르십시오.


📑 목차

  • 먼저, 이 편의 결론
  • 8. 해외 6개국은 어떻게 했나
  • 9. 저울에 올리면
  • 10. 그래서 어떻게 설계해야 하나
  • 11. 이 결론이 뒤집히는 조건
  • 12. 남는 질문 / 한계
  • 이 편의 유보
  • 참고문헌
  • 용어 (이 글에서)

먼저, 이 편의 결론

앞 편에서 가져오는 것. 1편이 세운 판정 기준 세 조건과 2편이 실측한 두 마찰이다. 세 조건은 이렇다. 적립단 조건은 실적배당형과 기금형이 위험을 감안하고도 원리금보장형보다 의미 있게 더 벌어야 한다는 것, 전달 조건은 그렇게 번 이익이 선택 마찰과 인출 마찰을 넘어 실제 노후소득까지 내려와야 한다는 것, 설계 조건은 지배구조가 가입자 이익을 지키고 도입 방식이 저조한 채택률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은 순서대로 다 통과해야 하고, 하나가 막히면 뒤로 흐르지 않는다. 적립금 75.4%가 원리금보장에 잔류하고 수급자 83.5%가 일시금으로 빼 간다. 이 편은 그 위에서 해외 사례를 보고 판정을 내린 뒤 설계로 넘어간다.

이 편이 답하는 질문. 해외는 어떻게 했고, 한국은 무엇을 바꿔야 기금화가 실제로 내 노후소득이 되는가.

이 편의 결론.

  1. 6개국 중 적합도가 가장 높은 것은 영국의 옵트아웃 자동가입이다. 기본값을 참여로 두는 것만으로 1,580만 명이 들어왔고 보수 상한은 0.75%로 묶였다. 반대편에 칠레가 있다. 순수 개인계좌에 낮은 기여, 연대 장치 없음이라는 조합은 실패했다.
  2. 세 조건을 저울에 올리면 적립단은 부분 충족, 전달은 현재 미충족, 설계는 미정이다. 그래서 판정은 무조건 도움도 무용지물도 아닌 조건부 도움이다. 설계 개입 없이 기금형만 도입하면 개인의 순편익은 실현되지 않는다.
  3. 다섯 처방의 공통 원리는 하나다. 성패는 그릇이 아니라 기본값에 있다. 자산배분과 참여, 인출 세 기본값을 옳게 설정하는 것이 방향의 핵심이고, 나머지는 그것을 지탱하는 장치다.

8. 해외 6개국은 어떻게 했나

해외 6개 선진 모델은 한국 정부안과 방향이 대체로 맞고, 성패는 옵트아웃 자동참여와 인출 설계라는 두 디테일에 달렸다. 칠레만이 피해야 할 반면교사다.

호주. 강제기여와 옵트아웃 디폴트의 원형

호주의 퇴직연금 제도를 슈퍼애뉴에이션이라 부른다. 총자산 4.3조 호주달러로 세계 4위급 연금풀이고, 법정 강제기여율(SG, Superannuation Guarantee)은 2025년 7월 12%까지 인상이 완료됐다. 6인 초과 기금의 최근 수익률은 연 8%대, 5년 연평균 7%대였다.

한국에 주는 함의는 두 겹이다. 긍정적으로는 강제기여와 MySuper 옵트아웃 디폴트의 조합이 한국의 '사외적립 의무화 더하기 기금형 디폴트'와 정확히 대응한다. MySuper는 호주 정부가 인가한 저비용 표준 디폴트 상품군을 가리킨다.

부정적으로는 호주조차 인출 국면에서 새고 있다는 점이 경고가 된다. Super Members Council(2025)은 은퇴자가 인출 전략을 방치해 신규 은퇴자 1인당 최대 13.6만 호주달러의 손실을 보고, 65세 이상 상당수가 과세 계좌에 자금을 방치해 추가 비용을 물고 있다고 분석했다. 적립을 강제해도 인출 설계를 함께 짜지 않으면 후생이 샌다는 것이고, 2편 6장에서 본 한국의 인출 마찰과 판박이다. 적합도는 높다.

네덜란드. 산업별 연합형 기금

네덜란드는 근로자의 약 90%가 직역별, 산업별 연금에 가입해 있다. 2023년 7월 발효된 연금개혁법(Wtp)에 따라 2028년 1월까지 전통적 DB에서 집단형 DC로 전환한다. 집단형 DC(CDC)란 개인이 위험을 지되 집단으로 완충하는 네덜란드형 계약을 말한다. 기여상한은 소득의 30%(전환기 33%)이고, 대표 기금 ABP의 2024년 총투자수익률은 8.6%였다.

산업별로 조성된 대형 연합기금이라는 구조는 한국 기금형 3모델 중 비영리 연합형과 직접 대응한다. 다만 네덜란드의 자산 대비 GDP 비율이 150.9%에 이르는 것은 수십 년에 걸친 강제, 준강제 적립의 결과이므로 한국이 단기간에 그 밀도에 도달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적합도는 높다.

덴마크 ATP. 저비용 공공 디폴트

덴마크의 준공적 기금 ATP는 정액기여 방식으로, 전일제 근로자가 고용주 3분의 2와 근로자 3분의 1로 분담한다. 덴마크 전체 연금자산은 GDP의 206%로 유럽 최고 수준이고, 특히 저소득층 대체율이 OECD에서 가장 높다는 점이 강점이다. 대체율이란 은퇴 후 연금소득을 은퇴 전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노후소득이 얼마나 적정한지를 재는 핵심 지표다.

저소득층과 영세 사업장을 저비용 공공 기금으로 흡수한다는 발상은 한국의 공공 개방형 모델, 그리고 푸른씨앗의 확장과 맞닿는다. 적합도는 중간에서 높음 사이다.

영국. 자동가입과 저비용 상한

영국의 자동가입 제도는 최저기여율 8%로, 2024/25년 기준 1,580만 명이 가입해 총 760억 파운드(고용주, 근로자, 세제혜택 합산)를 적립했다.

핵심은 둘이다. 하나는 옵트아웃 구조로, 일단 자동으로 가입시키고 원하면 탈퇴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공공 디폴트 기금 NEST의 저비용 규제로, 2015년부터 연 관리보수 상한을 0.75%로 묶었다. 한국의 디폴트옵션이 옵트인 함정에 빠져 있는 것과 정반대로, 영국은 기본값을 참여로 설정해 압도적 가입률을 달성했다. 한국 정부안이 저조한 채택률을 피하려면 이 옵트아웃 원리를 반드시 이식해야 한다. 적합도가 가장 높은 사례다.

스웨덴 AP7 Såfa. 생애주기 디폴트

스웨덴 공적연금은 소득의 18.5%로 구성된다. 소득비례 방식이 16%포인트, 프리미엄연금이 2.5%포인트다. 가입자가 프리미엄연금 운용을 직접 고르지 않으면 국가 디폴트 펀드 AP7 Såfa로 자동 배정된다.

Såfa는 2024년 27.3%의 수익을 냈다(주식펀드 29.8%, 채권펀드 3.1%). 젊을 때 주식 100%에서 나이가 들수록 채권을 편입하는 생애주기 글라이드패스로 설계돼 있다. 이 사례가 이 글의 자산배분 규범이 왜 고정 60 대 40이 아니라 글라이드패스인지를 보여준다. 잘 설계된 공공 디폴트는 젊은 층에 위험자산을 충분히 담으면서도 은퇴 시점 위험을 나이에 따라 관리한다. 한국 디폴트옵션이 원리금보장에 94% 쏠려 있는 것과 정반대의 교본이다. 적합도는 높다.

칠레. 순수 개인계좌의 반면교사

칠레는 1981년 세계 최초로 공적연금을 완전 민영화해 개인계좌(AFP) 체제로 전환했다. 결과는 낮은 대체율이었다. 2015년에서 2023년 사이 은퇴자의 자가재원 중위 대체율은 여성 11%, 남성 26%에 그쳤다. 기여밀도가 낮고 사각지대가 컸기 때문이다. 기여밀도란 일하는 기간 중 실제로 보험료를 낸 기간의 비율을 말한다. 이직이 잦거나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면 이 값이 떨어지고, 계좌에 쌓이는 돈도 그만큼 얇아진다.

이에 칠레는 2025년 개혁으로 의무기여율을 10%에서 16%로 올리고, 추가분 일부를 개인계좌가 아닌 연대 재원으로 돌리기로 했다. 교훈은 명확하다. 순수 개인계좌에 낮은 기여, 연대 장치 없음이라는 조합은 실패한다. 한국이 계약형을 존치하되 기금형과 공공형, 연대장치를 병행하는 방향은 칠레의 실패를 피하는 정공법이다. 칠레의 실패 원인이 사각지대와 낮은 기여밀도였다는 점은, 1편 1장에서 못 박은 이 글의 유효 범위 한정과 정확히 같은 문제를 가리킨다. 적합도는 낮고 피해야 할 모델이다.

적합도 종합

국가 핵심 메커니즘 대표 수치 한국 정부안 대응 적합도
호주 강제기여 12%에 MySuper 옵트아웃 디폴트 자산 4.3조 호주달러, 연 8%대·5년 7%대 사외적립 의무화 + 기금형 디폴트 높음(인출단 경고 포함)
네덜란드 산업별 연합기금과 CDC 전환 커버리지 약 90%, ABP 8.6%(2024) 비영리 연합형 모델 높음
덴마크 ATP 저비용 공공 정액기여 자산 대비 GDP 206%, 저소득 대체율 최고 공공 개방형·푸른씨앗 확장 중간에서 높음
영국 자동가입(옵트아웃)과 보수상한 0.75% 1,580만 명, 760억 파운드 저채택 방지 옵트아웃 설계 매우 높음
스웨덴 AP7 생애주기 글라이드패스 디폴트 Såfa 2024년 27.3%, 주식 29.8% 디폴트옵션 재설계 높음
칠레 순수 개인계좌(AFP) 대체율 여성 11%·남성 26% (반면교사) 피할 모델 낮음

읽는 법(표 2). '한국 정부안 대응' 열과 '적합도' 열을 함께 보자. 각국 메커니즘이 한국안의 어느 부품에 대응하는지, 그리고 이식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가장 높은 것은 영국의 옵트아웃 자동참여다.

표 2. 해외 6개국 모델의 한국 적합도 판정. 데이터 기준은 각국 최신 공시다. Source: 본문 각국 인용 및 아래 출처 절.

여기까지의 소결. 한국이 취해야 할 조합은 명확하다. 영국과 호주에서는 옵트아웃 자동참여를 가져오고, 네덜란드와 덴마크에서는 연합형과 공공형 기금을 가져온다. 스웨덴에서는 생애주기 디폴트를 이식한다. 칠레형 순수 개인계좌는 피한다. 정부안이 계약형 존치에 기금형 3모델을 병행하는 구도는 이 국제 교훈과 방향이 일치한다. 적합도는 전반적으로 높으나 성패는 옵트아웃과 인출 설계라는 두 디테일에 달렸다.


9. 저울에 올리면

이제 세 축의 실측을 저울에 올린다.

편익 쪽.

  • (1) 적립 단계에서 위험자산을 담는 실적배당형은 원리금보장형의 2.7배를 벌었다. 단 이 격차는 담는 자산이 다른 데서 오는 효과이지 기금형 구조 자체의 효과가 아니며, 기금형의 순수한 구조 우위는 푸른씨앗 동년 1.78배가 상한에 가까운 값이다.
  • (2) 국민연금 소진 국면(2040년 정점에서 2055년 소진)에서 퇴직연금이 이론상 67% 규모의 완충 여력을 갖는다. 자산구성을 바꾸면 국내주식 완충 잠재력이 7.5%에서 118%로 커진다. 단 인구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을 통제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 (3) 사외적립 의무화는 체불액의 40%를 차지하는 미지급 퇴직금 위험을 구조적으로 차단한다.
  • (4) 규모의 경제와 저비용은 대형 기금화의 분명한 이득이다. 비용부담률이 국민연금 0.089%, 퇴직연금 0.336%로 갈린다.
  • (5) 국제적으로 낮은 적립 수준을 끌어올릴 제도적 계기가 된다. 재계산하면 GDP 대비 약 18.7%로 OECD 평균 24.7%와 약 6%포인트 차이다.

비용과 위험 쪽.

  • (1) 수익 우위의 상당분이 순수 운용역량이 아니라 자산배분에서 나오므로, 자산구성이 실제로 바뀌지 않으면 편익도 실현되지 않는다.
  • (2) 선택 마찰. 2.7배 격차에도 75.4%가 원리금보장에 잔류하고, 디폴트옵션 자금조차 94% 안팎이 원리금보장에 쏠려 있다.
  • (3) 인출 마찰. 수급자 83.5%가 일시금으로 인출해 노후소득 목적이 인출 단계에서 샌다.
  • (4) 저조한 채택 위험. 현행 디폴트옵션이 옵트인 방식이라 자금의 94%가 원리금보장에 방치된 것이 실증 경고다. 기금형도 옵트인으로 도입되면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 (5) 이해상충과 정치경제 우려. 이해상충이란 남의 돈을 맡은 쪽이 맡긴 사람의 이익과 자기 이익 사이에서 갈리는 상황을 말한다. 거대 기금의 시장 개입에는 이 논란이 따르는데, 이 항목의 방향성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이 글의 판단이다. 기존 사업자인 금융기관의 수수료 이해관계는 설계 조건의 입법과 시행 가능성을 낮추는 변수다.
  • (6) 커버리지 사각. 2층 적립이 얇은 사각지대에는 편익이 닿지 않아, 개선의 과실이 이미 적립이 두꺼운 상위층에 집중되면 역진성이 생긴다. 역진성이란 제도의 혜택이 형편이 나은 쪽에 더 많이 돌아가 격차가 벌어지는 성질을 말한다.

종합 판정. 판정 기준의 세 조건을 대입하면 적립단 조건은 부분 충족(우위는 실재하나 자산배분에 달렸다), 전달 조건은 현재 미충족(선택과 인출 마찰), 설계 조건은 미정(옵트아웃과 수탁자책임 도입 여부에 달렸다)이다.

이 글의 판정은 단순히 "설계에 달렸다"가 아니라, 현재 데이터상 전달 조건이 미충족이므로 10장의 설계 개입 없이 기금형만 도입하면 개인의 순편익은 실현되지 않으며, 이 예측은 11장의 수치와 기한 조건이 반대로 나오면 틀린 것으로 판명된다는 검증 가능한 주장이다.

퇴직연금 기금화는 개인에게 "무조건 도움"이 아니라 "설계에 달린 조건부 도움"이다. 기금형이라는 그릇 자체는 방향이 옳고 정부 동인도 정당하다. 그러나 편익은 그릇이 아니라 그 안의 세 가지 설계, 즉 자산배분을 실제로 바꾸는 디폴트와 저조한 채택을 막는 옵트아웃, 그리고 인출을 연금으로 유도하는 장치가 갖춰질 때만 실현된다. 그것도 2층에 적립이 쌓이는 가입자에게만 실현된다. 이 셋 없이 기금형만 도입하면 이름만 바뀐 또 하나의 저수익 일시금 제도가 될 위험이 있다.


10. 그래서 어떻게 설계해야 하나

종합 판정이 조건부 도움인 이상, 방향은 그 조건들을 채우는 설계로 수렴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의 기금형 설계 논고와 6개국 사례를 결합해 다섯 가지 처방으로 정리한다.

처방 1. 네 기능을 나누고 책임은 하나로 묶는다

믿을 만한 기금 지배구조는 네 기능이 서로 구분되면서도 수탁자책임이라는 하나의 책임체계로 연결되는 구조여야 한다. 네 기능은 이렇게 갈린다. 무엇을 살지 정하는 것이 의사결정이고 실제로 굴리는 것이 운용이다. 자산을 따로 맡아 두는 것이 보관집행이며, 그 셋을 검사하는 것이 감독검증이다. 수탁자책임을 선언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이해상충 통제와 성과 공시, 성과가 나쁜 기금의 시정과 퇴출, 가입자 이동권을 구체적인 규율로 못 박아야 한다. 계약형에서 회사와 금융기관에 있던 결정 권한이 기금형에서는 가입자 이익 중심으로 옮겨 가는 것, 이것이 기금화의 본질적 의의다.

처방 2. 기금형 세 유형을 다르게 설계하고 다르게 감독한다

기금형에는 공공형과 비영리 연합형, 금융기관 개방형의 세 유형이 있고 유형마다 목적이 다르다. 공공형은 가입률과 사각지대 해소를, 연합형은 지속성과 대표성을, 금융기관 개방형은 위험을 감안한 장기수익률과 비용효율을 노린다. 세 유형에 같은 규제와 같은 지배구조를 일률적으로 부과하면 각 유형의 장점이 희석된다. 유형별로 성공 판단기준과 감독방식을 나눠야 한다. 특히 공공형은 1편 1장에서 짚은 사각지대 흡수를 명시적 목표로 삼아야 역진성을 완화할 수 있다.

처방 3. 디폴트옵션을 옵트인에서 옵트아웃으로 바꾼다

"선택형 디폴트옵션"이라는 언어모순을 해소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가입자가 고르지 않아도 전문적으로 운용되고, 원하면 언제든 바꾸거나 빠져나갈 수 있는 진짜 옵트아웃으로 전환해야 한다. 영국 자동가입과 호주 MySuper, 스웨덴 AP7 Såfa가 실증하듯 기본값을 참여와 투자로 설정하는 것만으로 자산배분이 극적으로 개선된다. 여기에 스웨덴형 생애주기 글라이드패스를 디폴트에 심으면 위험자산을 담으면서도 은퇴 시점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

처방 4. 계약형도 함께 고친다

기금형은 전면 전환이 아니라 여러 구조 중 하나로 도입되므로, 계약형도 같이 개선해야 전체 후생이 오른다. 네 축을 병행한다. 계약형 운용구조 개편, 디폴트옵션 개선(처방 3), DB 적립금의 일임위탁 확대, 퇴직연금사업자 평가와 비교공시 개선이다. 일임위탁이란 자산 운용의 의사결정 권한을 전문 운용사에 통째로 맡기는 방식으로, 상품을 하나하나 고르는 대신 목표와 제약만 주고 그 안에서 굴리게 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안이 계약형을 존치하되 기금형을 병행하는 구도는 이 처방과 맞는다.

처방 5. 은퇴할 때 연금으로 받게 유도한다

2편 6장에서 본 인출 마찰을 방치하면 적립 단계의 개선이 무의미해진다. 호주조차 인출을 방치해 1인당 최대 13.6만 호주달러를 잃는다. 연금 수령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기본값을 연금 수령으로 두되 원치 않으면 일시금을 고르게 하는 식으로 설계를 옮겨야 한다. 다만 이직이 잦고 중도인출 수요가 큰 한국 노동시장의 현실을 감안해 유연성은 남겨야 한다.

다섯 처방의 공통 원리는 하나다. 기금화의 성패는 그릇이 아니라 기본값에 있다. 자산배분과 참여, 인출의 세 기본값을 옳게 설정하는 것이 방향의 핵심이다.

설계보다 어려운 것

이 처방들이 실제로 입법되고 시행되느냐는 순수한 기술 설계 문제가 아니다. 계약형을 전면 전환이 아니라 존치와 병존으로 둔 정부안 자체가 기존 사업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산물일 수 있다. 옵트아웃과 저비용 상한(영국형 0.75%), 연금화 기본값은 사업자의 수수료 기반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따라서 설계 조건의 실현은 이해관계 조정 문제이며, 이 축은 이 글이 수치로 재지 못한 채 남는다. 설계 조건을 미정으로 두고 시행 이후 임계치로 검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1. 이 결론이 뒤집히는 조건

판정을 내렸으니 그 판정이 어떤 증거 앞에서 무너지는지를 기간과 폭, 평가 시점을 정해 밝힌다. 아래 조건들은 "결과가 안 좋으면 조건 미충족"이라는 식의 사후 끼워맞추기가 아니라, 미리 못 박은 임계치를 실제 데이터가 넘느냐로 판정한다.

조건 1. 적립단 우위가 강세장 효과에 불과했을 경우. 2026년에서 2030년 사이 5개 연도 중 3개 연도 이상에서 실적배당형 연수익률이 원리금보장형을 밑돌거나, 같은 5년 누적 위험조정수익이 원리금보장형 이하이면 "구조적 우위" 판정을 "시장국면 의존"으로 강등한다. 위험조정수익이란 얼마를 벌었는지만 보지 않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출렁였는지로 나눠 본 성적으로, 같은 수익이라도 덜 흔들리며 번 쪽을 높게 친다. 2022년 말 초과수익이 마이너스 17bp였던 사실이 이 위험이 실재함을 보여준다. 이 검증에는 실적배당형 안쪽의 위험자산 비중 제고(현행 주식 30%대)가 선행돼야 한다.

조건 2. 옵트아웃으로 바꿔도 인출 마찰이 계속될 경우. 이 조건은 옵트아웃과 연금화 기본값이 입법되고 시행된 뒤에야 평가할 수 있으므로 평가 시점을 시행 후 3년으로 못 박는다. 그 시점 신규 수급자의 연금 선택 비율이 현행 16.5%에서 최소 30%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면 전달 조건은 무너진 것으로 본다. 시행 전까지 이 조건은 미확정으로 두며 판정에 유리하게 끌어 쓰지 않는다.

조건 3. 완충재 서사가 인구 구조 앞에서 무너질 경우. 정부 동인의 핵심인 '국내주식 7.5%에서 118%로'와 '2040년 67% 완충'은 퇴직연금이 그 국면에 순공급자로 남는다는 가정에 기댄다. 2035년에서 2045년 사이 실제 자료에서 퇴직연금의 순흐름(새로 쌓이는 돈 빼기 목돈 인출 빼기 연금 지급)이 국민연금 순매도를 상쇄하는 양의 순공급을 내지 못하면, 특히 베이비부머 대량 은퇴로 목돈 인출이 신규 적립을 잠식해 순인출자로 돌아서면 완충재 동인은 기각된다. 이는 "메커니즘이 안 켜지면 효과 없다"는 동어반복이 아니라, 잔액이 아니라 순흐름으로 완충 여부를 직접 판정하는 검증이다.

조건 4. 기금형이 옵트인으로 도입돼 채택률이 낮을 경우. 기금형이 옵트인 방식으로 도입될 경우 시행 후 2년 시점 기금형 적립금 점유율이 두 자릿수인 10%에 도달하지 못하면 설계 조건이 무너진 것으로 본다. 이 임계의 근거는 현행 디폴트옵션의 실패, 즉 옵트인이라 자금의 94% 안팎이 원리금보장에 방치된 사실이다.


12. 남는 질문 / 한계

이 판정이 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 글의 판정은 2층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다. 2층 적립이 얇거나 아예 0인 사각지대에는 기금화의 편익이 닿지 않는다. 자영업자와 플랫폼 종사자가 그렇고, 초단시간 근로자와 단기근속자, 영세사업장 근로자가 그렇다. 개선의 과실이 이미 적립이 두꺼운 상위층에 집중되면 노후자산 격차가 오히려 벌어질 수 있다. 사각지대를 2층으로 끌어들이는 가입 확대는 이 글이 다루지 않은 별개의 과제로 남는다. 칠레의 실패가 정확히 이 사각지대와 낮은 기여밀도에서 왔다는 점이 이 한계의 무게를 뒷받침한다.

국내 완충과 해외 분산은 부딪힌다. 1편 3장에서 밝혔듯 국내주식 118% 완충은 국민연금과 비슷한 국내 중심 구성을 가정한 값인 반면, 가입자 후생을 위한 글라이드패스 분산은 해외자산을 늘리는 방향이다. 정부의 국내 자본시장 완충 목표와 개인의 최적 분산이 어디서 충돌하고 어디서 양립하는지는 이 글이 수치로 풀지 않았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제도 내용이 있다. 2026년 7월 실무작업반의 세부안은 로드맵 단계다. 인허가 요건과 수탁자 의무의 구체적 내용은 이후 공식 발표로 갱신된다.

다음에 확인할 것. 실적배당형 안쪽의 위험자산 비중과 위험조정수익의 시계열 분해로 조건 1을 직접 검증하는 일, 옵트아웃 전환 전후 자산배분과 인출행태를 비교하는 일, 퇴직연금 순흐름을 연도별로 추정해 조건 3을 검증하는 일, 기금형 세 유형별 비용과 수익, 가입률의 조기 모니터링 지표를 설계하는 일, 그리고 사각지대 커버리지 확대가 역진성을 얼마나 완화하는지를 재는 일이다.


이 편의 유보

  • 처방이 실제로 입법·시행되느냐는 기술 설계 문제가 아니라 이해관계 조정 문제다. 옵트아웃과 저비용 상한, 연금화 기본값은 기존 사업자의 수수료 기반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 판정은 2층 가입자에게만 닿는다. 사각지대를 2층으로 끌어들이는 가입 확대는 별개의 과제다.

참고문헌

이 편이 인용한 자료를 장·절별로 배열했다. 알파벳순 단일 목록이 아니라 본문 순서를 따르는 이유는, 독자가 특정 대목의 근거를 바로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전건 딥링크이며 도메인 루트나 섹션 인덱스는 넣지 않았다. 시세·배수처럼 값이 계속 바뀌는 조회처는 여기가 아니라 해당 표 아래 각주에 조회일과 함께 적었다.

§8. 해외 6개국은 어떻게 했나

  • ASFA. (2024). Superannuation Statistics Explainer [PDF]. https://www.superannuation.asn.au/resources/superannuation-statistics/
  • APRA. (2025). Annual superannuation bulletin 2024-25 highlights. https://www.apra.gov.au/annual-superannuation-bulletin-2024-25-highlights
  • Super Members Council. (2025). Retirement phase leakage report. https://smcaustralia.com/news/ [기관 홈]
  • Australian Government, Treasury. (2023). Intergenerational Report 2023. https://treasury.gov.au/publication/2023-intergenerational-report
  • Lockton. (2023). Netherlands Pension Reform (Wtp); (2025) Chile Pension Reform. https://global.lockton.com/gb/en/news-insights [기관 홈]
  • European Pensions. (2024). ABP returns 8.6% in 2024; AP7 Såfa returns 27.3%. https://www.europeanpensions.net/ep/ [기관 홈]
  • Department for Work and Pensions (UK). (2025). Workplace Pension Participation and Savings Trends 2009 to 2024. https://www.gov.uk/government/statistics/workplace-pension-participation-and-savings-trends-2009-to-2024
  • UK Government. (2015). The default fund charge cap. https://www.gov.uk/government/publications/the-default-fund-charge-cap

§9. 저울에 올리면

  • (이 장은 앞 장들의 출처를 종합한다. 새로 인용한 자료가 없다.)

§10. 그래서 어떻게 설계해야 하나

  • 남재우. (2026).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설계의 주안점 [자본시장포커스 2026-14호]. 자본시장연구원. https://www.kcmi.re.kr/common/downloadw?fid=29058&fgu=002001016&fty=004003

§11. 이 결론이 뒤집히는 조건

  • (이 장은 앞 장들의 출처를 종합한다. 새로 인용한 자료가 없다.)

§12. 남는 질문 / 한계

  • Dirección de Presupuestos (Chile). (2025). Self-financed replacement rates 2015-2023. https://www.dipres.gob.cl/ [기관 홈]

용어 (이 글에서)

본문에서 이미 풀어 쓴 것을 다시 찾기 쉽게 모았다.

용어 뜻
슈퍼애뉴에이션 호주의 퇴직연금 제도. 총자산 4.3조 호주달러로 세계 4위급 연금풀이다
MySuper 호주 정부가 인가한 저비용 표준 디폴트 상품군
집단형 DC(CDC) 개인이 위험을 지되 집단으로 완충하는 네덜란드형 연금계약
대체율 은퇴 후 연금소득을 은퇴 전 소득으로 나눈 값. 노후소득이 얼마나 적정한지를 재는 핵심 지표다
기여밀도 일하는 기간 중 실제로 보험료를 낸 기간의 비율. 이직이 잦거나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면 이 값이 떨어진다
일임위탁 자산 운용의 의사결정 권한을 전문 운용사에 통째로 맡기는 방식. 상품을 하나하나 고르는 대신 목표와 제약만 준다
위험조정수익 얼마를 벌었는지만 보지 않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출렁였는지로 나눠 본 성적. 같은 수익이면 덜 흔들리며 번 쪽을 높게 친다
이해상충 남의 돈을 맡은 쪽이 맡긴 사람의 이익과 자기 이익 사이에서 갈리는 상황
역진성 제도의 혜택이 형편이 나은 쪽에 더 많이 돌아가 격차가 벌어지는 성질
DB(확정급여형) 받을 퇴직급여가 미리 정해져 있고 운용 책임은 회사가 진다. 손해가 나도 회사가 메운다
DC(확정기여형) 회사가 넣어 주는 금액이 정해져 있고 운용 책임과 성과는 근로자 본인이 가져간다
bp(베이시스포인트) 수익률 차이를 재는 단위. 1bp가 0.01%포인트, 100bp가 1%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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